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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였던 일본의 경제위기,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됐을까?

by 익스디퍼런트 202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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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비극의 시작 : 플라자합의

 

한국을 설명할 때 떼어놓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 옆나라지만 멀고도 가까운 일본은 한때 GDP 세계 2위

국가로서 경제 구모로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경기 침체로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되면서 GDP 2위 자리를 중국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내주었습니다. 

 

당시 일본 경제의 붕괴는 전 세계적인 이슈였습니다. 근래에는 일본의 대지진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우리나라

뉴스거리지만, 1990년대에는 일본의 경제 침체가 메인 뉴스로 다루어질 정도였습니다.

 

한국은 쳐다보지도 않고 잘 나가던 일본 경제는 어떻게 하다가 장기 침체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요?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은 1985년 「플라자합의」였습니다.

 

지금이야 미국에 가장 많은 무역적자를 가져다주는 나라가 중국이지만 1985년에 그 자리는 일본의 독차지였습니다.

 

일본 제품의 미국 수출이 호조를 보인 것입니다. 특히 일본 자동차가 큰 인기를 주도했습니다. 1970년대에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물가가 오르는 동시에 경기가 침체하는 스태크플레이션에 빠지면서, 미국인들은 크로 비싸며 기름을

많이 먹는 미국 자동차보다 작고 싸며 야무지고 연비가 좋은 일본 자동차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조업의 경쟁력을 향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기업들의 경쟁력이 좋아지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보다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국의 통화가치를 올려

인위적으로 미국 제품의 가격을 내렸습니다. 

 

결국 미국은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 가치를 올려버리는「플라자합의」를 단행했습니다.

 

이때부터 일본 경제의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 1985년 미국의 국가별 무역수지 >

국가 금액(백만 달러) 비중
일본 -49,749 37.2%
독일 -12,182 9.1%
아프리카 -7,654 5.7%
멕시코 -5,757 4.3%
이탈리아 -5,756 4.3%
프랑스 -3,864 2.9%
중국 -369 0.3%
총 무역수지 -133,648  

 

 

일본 경제위기의 주범 : 유동성 과잉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가치는 일주일 만에 8% 상승했고, 3년 만에 두 배로 폭발적으로 뛰었습니다. 반면 달러가치는

2년 만에 반토막으로 하락했습니다.

 

엔화가치가 두 배로 올랐다는 것은 일본의 상품 가격도 두 배 가까이 오른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일본의 수출기업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의 경기 침체는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요타, 혼다, 소니 등 당시 일본을 대표했던 제조업 기업들은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오늘날까지 여전히

글로벌 대기업으로서 위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이와 같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한 것일까요?

 

그 비결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일본 기업들의 눈물겨운 비용 절감 노력입니다. 매출이 줄면 비용을 줄여서 이익을 보존해야 합니다.

일본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도 했지만 흔히 얘기하는 '바짝 마른 수건을 더 짜내는' 피의 노력으로 생산 관리 부분 비용을

절감해 생산원가를 낮추는 데 주력했습니다. 생산비용을 줄여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둘째는 1993년에 있었던 NAFTA의 체결입니다. NAFTA는 미국, 멕시코, 캐나다, 간의 자유무역협정이지만 이 지역에서

일정 비율 이상 생산되는 제품은 NAFTA 제품으로 인정받아 북미지역에서 자유무역이 가능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에 공장을 설립해 상품을 생산했고,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미국을 포함한

북미지역에 관세 없이 수출이 가능했습니다. NAFTA가 일본 수출 기업들에게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쨌든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은 돈을 풀어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자 온갖 노력을 했습니다. 5%가 넘어가던 기준금리를

2.5%로 대폭 내리자 통화량이 늘어났고, 이로 인해 예부터 각종 경제위기를 몰고 다니던 유동성 과잉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일본에 돈이 많아지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Black Monday(검은 월요일)' 때문입니다.

 

Black Monday란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미국의 주각가 폭락한 사태를 말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금리인상으로

버블이 붕괴되면서 미국의 주가가 미친 듯이 폭락했습니다. 깜짝 놀란 미국은 급격히 금리를 내렸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도 이에 동조해 서둘러 금리를 내렸습니다. 이와 같은 금리인하는 글로벌 유동성의 증가를 부추겼고, 이때 풀린

글로벌 자금이 일본으로 흘러들어 온 것입니다.

 

엔고현상으로 경기 침체를 우려하던 일본은 어느새 돈이 흘러넘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도쿄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조차 주둥이에 1만 엔짜리 지폐를 하나씩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 일본에는 돈이 이곳저곳

돈이 흘러넘쳤습니다.

 

 

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의 주부 외환투자자 : 와타나베 부인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아내가 가정의 돈을 쥐고 경제권을 갖습니다. 남편이 돈 관리를 하는 비중은 전체 부부의 1/4도

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남편들은 주로 아내가 주는 용돈을 받아 생활합니다. 개인주의가 발달했다고 하는 

서양에서도 여성이 돈 관리를 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돈관리 하는 여성을 각각 '소피아 부인', '스미스 부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에서는 돈 관리하는 여성을 '와타나베 부인'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래도 남성보다 더 꼼꼼한 여성이 돈 관리하는 것은 우리나라나 유럽, 미국, 일본도 다 마찬가지인 거 같습니다.

 

지금이야 일본인들이 근면하고 저축을 많이 하는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돈을

펑펑 썼습니다. 와타나베 부인들은 돈이 없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라도 소비를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은행에서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돈을 빌려줬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당시에는 LTV가 무려 120%였기 때문에 1억 원짜리 집을 사는데 1억 2,000만 원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집값이 20% 넘게 오를 것이라는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니 집을 여러 채 수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투기 과열로 집값도 크게 올랐습니다. 유동성 과잉의 결과로 어김없이 자산 버블이 생긴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자국에서만 돈을 쓴 것은 아닙니다. 돈 많던 와타나베 부인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해외 부동산 투자 붐이

일어났습니다. 플라자합의로 엔화가치가 두 배로 뛰면서 예전에 미국의 주택을 한 채만 살 수 있었다면 이제는 같은

돈으로 두 채를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제주도 땅과 호텔을 싹쓸이 다 긁어 가듯이

당시 일본인들은 하와이의 땅을 사들였습니다.

 

이때쯤부터 할리우드 영화에 일본인이 부자로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로보캅 3>에서 영화에 나오는 일본 기업은 디트로이트시 전체를 사들여 기존 거주자들을 내쫓고 자기네들이

원하는 도시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이때 로보캅이 일본 기업과 맞서 싸우며 도시를 지켜냅니다. 일제 사무라이 로봇과

미제 로보캅의 대결은 이 영화 최고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너무 억지스러운 설정이지만

일본인이 시 전체를 살 정도로 부자로 나온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자산버블 붕괴

 

물가가 크게 오르자 일본은 물가를 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유동성을 회수하는 출구전략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려면 금리를 인상해야 했습니다.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통화량이 줄어들이 물가상승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 국제결제은행이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권고한 것도 금리인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은행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지급준비금의 비율을 높이려면 은행은 대출을 줄여야 합니다. 결국 금리를 올려야만

했고 2.5%까지 내려갔던 기준금리는 1년 만에 6%까지 올라갔습니다.

 

급격하게 금리가 오르자 시중의 유동성도 급격히 회수되었습니다. 결국 1990년 일본 주가는 9개월 만에 반 토막 났고

버블이 붕괴되면서 자산가치도 폭락했습니다.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크게 줄면서 실업자가 양산되었고, 채무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은행들도 힘들어졌습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집값이 폭락하면서 

순식간에 빚더비에 올라앉았습니다. 

 

그 당시 망한 일본인들 중에 아직까지도 집을 구하지 못하고 월세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1990년은 일본인들의 낙관적 미래와 꿈을 박살 내버렸을 뿐만 아니라 장기 불황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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